역사적인 만남들과 외교적 줄다리기 사이에서 한반도의 상황

LO STATO DELLA COREA

Tra incontri storici e altalene diplomatiche

김연수 스테파노 S.J. 안토니오 스파다로 S.J. 공저

오경택 안셀모 신부 옮김 (춘천교구, 묵호본당 주임신부)

서정화 루시아 감수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역사적인 회담이 이루어졌다. 회담은 한국전쟁의 종식을 제안하고 한반도의 비핵화를 이루기 위한 과업을 확인하는 합의된 선언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남북정상회담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있을 북한 최고 지도자와 미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만남을 위한 길을 열어 놓았다.

  한국 사회와 국제 정세 전문가, 그리고 가장 회의적 견해를 지닌 이들까지도 감격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반도의 경계선 안팎에서 진행되는 평화화 과정이 계속 이어지기를 희망하며, 최근에 일어난 사건들을 다시 바라보고 앞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전망을 제시하면서 평가를 해 보기로 한다.

  한반도의 두 정상 문재인과 김정은 사이의 신뢰 형성

  문재인과 김정은의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의 두 통치자 사이에서 이루어진 세 번째 회담이었다. 앞선 두 회담이 북한의 수도인 평양에서 열렸던 것과는 달리, 이번 회담은 판문점 남측 지역, “평화의 집(Casa della pace)”에서 개최되었다. 남북이 분단된 이후 북한 지도자가 판문점을 통해 남한 영토에 발을 들여놓았다. 남북 분단 이후 북한 지도자가 판문점을 통해 남한 영토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군사분계선 위에 있는 판문점은 1953년 남과 북 사이의 군사 활동을 중지한다는 정전협정이 체결된 곳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분계선에 이르렀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그를 따뜻하게 맞으며 물었다. “여기까지 온 것은 위원장님의 큰 용단이었습니다. 저는 언제쯤 북쪽으로 넘어갈 수 있겠습니까?” 김 위원장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그럼 지금 넘어가 볼까요?” 그리고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은 서로 손을 잡고 남측에서 북측으로 경계선을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왔고 공식 환영 인사를 이어 갔다. 두 정상은 내내 따뜻하고 우호적인 모습으로 서로를 대하였다. 가장 중요했던 순간은 다리 위에서 30분 정도 배석한 사람 없이 가졌던 벤치 회담이었다.

  정상 회담 이후 남한의 여론조사에서 77.5%의 응답자가 김정은 위원장에게 신뢰가 간다고 했고 문 대통령에 대한 국정 지지율은 86.3%에 이르렀다. 그리고 88.7%가 남북회담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1) 이러한 조사 결과는 대중 안에 화해에 대한 희망이 자리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교종 프란치스코는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의 회담이 있기 이틀 전인 4월 25일 알현에서 강한 호소와 함께 역사적인 순간을 동행했다. “평화를 열망하는 한국인들에게, 저의 개인적인 기도와 함께, 온 교회가 곁에서 동반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성좌는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고자 남북의 만남과 우정으로 이루어지는, 이 모든 유용하고 진실된 발걸음에 함께하며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직접적으로 정치적 책임을 지니신 분들에게, 평화의 ‘장인’으로서 희망이라는 용기를 지니시기를 청합니다. 또한 모든 이의 선을 위해 시작한 이 여정을, 신뢰를 지니고 추진해 나가기를 권고합니다.”2)

  판문점 선언

  남북정상회담의 끝에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DP: Dichiarazione di Panmunjom per la pace, la prosperità e l’unificazione della Penisola coreana)”이라는 제목의 문헌이 발표되었다.3) 선언문 1조는 두 지도자가 이루고자 하는 “남북 관계의 전면적이며 획기적인 개선과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기려는 과업을 담고 있다. 2조에서는, 남과 북이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함으로써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고 전쟁의 위험을 실질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해 나갈 것을 합의했다. 3조는 “한반도의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합의를 드러낸다. 이 평화체제는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하면서, 그리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노력을 재확인하면서 이루어진다.

  비록 한국인 상당수와 국제 매체들이 이번 회담에 대해 찬사를 보냈지만, 일부는 의문과 당혹감을 드러냈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는 2018년 4월 27일에 “북한과 남한의 정상회담, 쇼는 길었지만, 구체성은 적었다”4)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왜냐하면, 이 두 지도자가 평화체제와 비핵화 실현의 구체적인 방안을 합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어째서 이 두 지도자가 구체적 방안을 합의할 수 없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사실 1953년 7월 27일에 있었던 정전협정은 북한과 함께 미국과 중국의 합의로  이루어졌다. 그러기에 한반도의 이 두 지도자만으로 한국전쟁을 종식한다는 공식적이고 고유한 선언문을 발표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이들은 공식 결과를 공표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의 지도자들과 함께 협력해야만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은 “종전 선언과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갈 것”을 선언했다(DP 3.3.).

  무엇보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기로 하였다”라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DP 3.4). 문 대통령은 이 남북회담이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 놓는 역할을 하리라고 분명하게 언급하였다. 5월 9일 문 대통령은 중국과 일본의 총리들을 만났다. 5월 8일에는 김 위원장이 북한과 근접한 중국 북부 항구 도시 다롄에서 시진핑 주석을 만나 한반도와 관련한 정치 외교 상황의 전개에서 중국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는 두 달 사이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이어서 문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 5월 22일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네 번째로 만났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남북정상회담이 구체적 방안이 아닌, 단순한 지향들만을 제시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 두 지도자는 몇몇 특별한 결정들을 내릴 수 있었다. 그 안에는 2018년 아시안 게임 공동 참가와 2018년 8월 15일에 예정된 이산가족 상봉 계획이 있다. 이들은 결정되어야 할 모든 현안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을 구상하였다.

  그리고 고무적인 결정들을 이어갔다. 예를 들면 5월 1일 남과 북은 약속대로 군사분계선의 대남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장비들을 해체하였다. 그리고 5월 5일 북한은 남한보다 30분 늦던 평양 표준시를 서울 시각과 일치시켰다. 정상회담 중에 김 위원장은 표준시를 예전처럼 통일시키되, 북한에서 바꾸었던 것이니 다시 남한과 일치시키겠다고 언급하였다.

  남북정상회담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남북한 음악인들은 4월 3일 평양에서 함께 공연했다. 그리고 북한과 남한에서 어릴 적부터 배우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il nostro desiderio è l’unificazione)”을 노래했다. 수많은 적대행위와 비극적인 사건이 남북한 사이에 계속되었지만, 이들은 통일에 대한 염원을 잊은 적이 없다.

  정상회담 직후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남한 사람들의 75.5%가 통일이 필요하다 응답하였고5), 73.3%는 30년 안에 통일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했다.6)

  남북한의 많은 이가 두 지도자의 가장 시급한 과제로 이산가족 상봉을 꼽는다. 1950~1953년의 전쟁 이후 남과 북이라는 분단의 현실 속에서 천만 명이 가족과의 이별이라는 아픔을 겪고 있다. 이들 가운데 대부분은 정치적인 상황을 이유로 방문할 수도 없었고, 많은 경우 가족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1985년 이후, 이산가족 상봉은 21회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 소수만이 하루 혹은 이틀 동안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 2015년엔 남한에서 13만 명이 정부에서 마련한 이산가족 상봉 참여를 신청하였다.

  얼어붙었던 10년, 그 이후의 정세 변화

  남북한 사람들은 한반도에서 일어나는 평화적 물결 속에서 잃어버린 10년을 회상한다. 2000년에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었고, 2007년에 두 번째로 이어졌다. 그러면 2007년에서 2018년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한의 과업에 전적으로 대치되는 시기였던가?

  이명박(2008~2013)과 박근혜(2013~2017) 대통령 재임 동안 남한과 북한 사이의 관계는 계속해서 악화되어 급기야 이전의 정상들이 이루었던 합의까지 무효가 됐다. 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 시험 발사를 이어갔다. 남한에서는 이 대통령이 2010년 비무장지대 근처의 개성공단을 제외하고 남북한의 모든 교류를 전면 중단하기로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그 이후 박 대통령은 어느 정도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제안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과 북한의 긴장은 계속해서 증대되었고, 북한의 핵실험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이 이어졌다. 2016년 박 대통령은 급기야, 2002년 김대중 대통령부터 이어왔고 남북한 교류의 관계의 마지막 남은 자산으로 여겨지는, 개성공단의 폐쇄를 결정한다. 이는 마지막 남은 소통과 교류의 자산이었고, 공단이 해체되자마자 남북 관계는 얼어붙었다.

  2017년 “촛불 혁명(Rivoluzione delle candele)”7) 직후 문재인 대통령 정권 초기에 국민 대부분은 남북한 관계가 변화될 수 있기를 다시 희망했다. 왜냐하면 문 대통령이 김정은 현 위원장의 아버지 김정일과의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을 방문했던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임기 첫해에 문 대통령은 북한과 대화를 재개할 길을 찾았다. 그러나 북한은 그의 이러한 노력들에 응답하지 않았고, 오히려 2017년 9월 3일 제6차 핵실험 이후 소형 수소폭탄이 준비 완료되었음을 알렸다. 결국, 2017년 11월 29일 북한은 화성-15호,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했다. 이러한 도발적인 행동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은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평화로운 대화들을 향해 결정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을 얻어냈다.

  김 위원장은 새해 신년 인사에서 전환의 가능성을 드러냈다. 핵 프로그램 완성을 선포한 후 2018년 신년사에서는 하나의 깃발 아래 경기를 치르자는 문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들이면서, 남한에서 치러질 평창 동계 올림픽(2018년 2월 9~25일)에 북한 선수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이루어졌다.

  올림픽 폐막 이후 한 달이 지난 3월 말, 김 위원장은 베이징으로 향하는 방탄 열차에 올라, 공식적인 첫 해외 순방을 떠났다. 이는 시진핑 주석이 직접 초대하여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 순방에 김정은의 아내 리설주 여사와 수행원들이 함께했다. 김 위원장은 시진핑에게 미국과 공식 외교 관계를 시작하고, 북한에서 비핵화 절차가 착수되기를 원하며, 남한과 협력관계가 증진되는 길을 구상하고 있음을 설명하였다.

  5월의 답보 상태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의 4월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이 있었다. 4월의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시작하면서부터 남한은 미국과의 대화에 있어 열쇠와 같은 역할을 맡게 되었다. 더 나아가 현 미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 – 그 당시 아직 내정자였던, 전직 CIA 국장 – 는3월 말부터 4월 초까지김 위원장을 만나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준비하기 위한 목적으로 북한을 비밀리에 방문하였다. 이는 미 정부 관계자가 확인해 준 워싱턴포스트지 기사를 통해 알려졌으며 트럼프 대통령도 직접 이 소식을 밝혔다.

  미 정보국에 있었던 폼페이오의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몇몇 분석가들에 따르면,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온전히 외교술에만 기인하지 않기 때문이다.8) 폼페이오는 이어서 5월 8일, 두 번째로 북한을 방문했다.9) 그리고 그 다음 날 북한에 억류되었던 미국인 세 명이 자유를 얻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을 소환시킨 김정은 위원장의 결정을 선한 의지의 행동이라 정의하며 높이 평가하였다.

  그러나 이후에 상대를 향한 비난이 오가다가 즉각 화해와 봉합이 이루어지는 등 반대되는 사건들이 번갈아 일어났다. 공식 발표나 트윗이 이 모든 상황에 대한 미디어의 불안정한 반응을 부채질했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성사된 역사적 만남으로 이어진 사건들과 전체적 상황을 이해하려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5월 11일 북한은 예고 없는 미사일 발사 실험을 중단할 것이며, 추가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는 없을 것이라고 UN에 알려왔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해 북한 관계자들과 회합하던 중에 내려진 결정이었다. 이 결정에 관하여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측은, 북한민항총국 사무차장 리용선의 약속에 따르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완성했으므로 미사일 발사 실험은 더 이상 없으리라고 밝혔다. 이는 결코 부차적이라 할 수 없는 세부 사항이다.

  그 즉시 정세는 새로운 국면으로 나아갔다. 조선중앙통신은 5월 23일에서 25일 사이에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할 것이라 알렸다. 이는 갱도를 폭파하여 입구를 폐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었다. 이 결정은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과 4월 27일 판문점에서 만날 때 김 위원장이 요약한 이행 사항에 들어있었던 내용이다.

  북한은 2006년부터 2017년까지 풍계리에서 여섯 차례 핵실험을 실시하였다. 실험장 폐기는 남한, 중국, 미국, 영국, 러시아에서 온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몇몇 분석가들은 이 소식을 회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미 지난 핵 실험 이후 실험장 일부가 붕괴되어 안전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실험장 폐기는 분명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징조였다.

  그러나 5월 16일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긴장이 일어났다. 북측은 6월 12일로 예정되었던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과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에서 하기로 했던 남측과의 고위급회담을 전격 취소하였다. 그 지역에서 얼마 전부터 시작된 한미 연합훈련이 취소 이유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남한의 외교부 장관 강경화와 미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는 긴급한 통화를 통해 싱가포르에서 있을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준비가 계속 진행되어야 함을 서로 확인하였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 자신 역시 그 다음 날, 백악관에서 기자들을 향해 정상회담을 위한 대화는 계속되어야 함을 주지시켰다. 그리고 대통령은 북한과의 관계 “리비아 모델(modello libico)”10)을 적용한다는 생각을 배격했다. 이 모델은 북미회담 일주일 전에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언급하였다.

  5월 19일에는 긴장을 완화시킨 소식이 들려왔다. 제네바 주재 북한 유엔 대사 한태성은 유엔 회의에서 북한의 핵실험 중단은 “전 세계 군축에 중요한 과정(è un importante processo verso il disarmo globale)”이고, 북한은 “핵실험을 완전히 금지하기 위한 국제적 열망과 노력에 동참할 것(si unirà al desiderio e agli sforzi internazionali per il blocco totale ai test nucleari)”을 선언했다.

  초조함도 섞였지만, 희망을 놓지 않은 상태에서 급변하는 정세의 파고가 이어졌다. 5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은 남한의 문재인 대통령을 백악관에 맞이하며 6월 12일에 있을 정상회담이 연기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우리는 싱가포르에서 북한을 만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이 성사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내 생각에 이 일은 성사되기는 하겠지만, 그 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김 위원장이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만난 이후 태도가 바뀌리라고 예상하였습니다.” 김 위원장이 5월 8일에 다롄을 방문했을 때 중국 주석이 그를 유도하여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전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게 했음을 비난하는 발언이었다. 북측은 미국에게 “끔찍한 비극을 맛볼 수 있을 것(assaporare una terribile tragedia)”이라며 맞불을 놓았다. 그러나 그 사이 북한은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면서 비핵화의 길을 향한 첫걸음을 떼었다.

  중단과 재개

  5월 24일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직통으로 보내는 편지를 공개했다. 이 편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대면하리라 계획했던 회담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편지에서 위협과 유감이 배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에 있어 슬픈 순간(un momento triste per la storia)”이라 말하면서, “전 세계 그리고 특히 북한은 항구한 평화와 번영을 누릴 절호의 기회를 놓쳤습니다”라며 썼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정상회담과 관련하여 최근까지 지속된 협상에 들인 시간, 인내, 노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최근 성명에서 표출된 적개심을 보며 나는 현재 계획된 싱가포르 회담이 타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전 세계에는 손실이겠지만, 양측을 위하여 정상회담은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핵무기를 언급했습니다만 우리에게는 엄청나게 거대하고 강력한 것들이 있습니다. 나는 이것들을 사용할 일이 절대 생기지 않기를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작은 희망을 열어놓았다. “우리 사이에서 훌륭한 대화가 싹트고 있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한편으로, 지금 가족들과 함께 있을, 당신이 풀어준 인질들에 대해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이는 매우 아름다운 행동이었으며 높이 평가될 일입니다.” 그리고 결론 부분에 이르러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만일 이 중요한 정상회담과 관련해 위원장의 생각이 바뀌면, 주저하지 말고 나에게 전화를 걸거나 편지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편지가 공개된 후 북한은 국영방송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미국과의 대화가 여전히 열려 있다(è ancora aperta a colloqui con gli Stati Uniti)”고 밝혔다.

  그리고 5월 26일 또 하나의 극적인 장면이 일어난다.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이 최근 발생한 위기들을 논의하기 위해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또다시 만났다. 이 2차 회담은 서로를 향한 포옹과 미소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소통의 지도자 남한 대통령은, “두 지도자는 판문점 선언 실행에 대해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의 성사를 위해 진솔하게 의견을 주고받았다”라고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대화로 이끌어 가기 위해 온당하고 균형 잡힌 길들을 제시할 수 있는, 언제나 능력 있는 중재자이자 용단 있는 정치가로 드러났다.

  그리고 곧이어 5월 28일 미국과 북한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관한 대화를 다시 이어갔다. 미 국무부는 미국 정부 대표단이 북한과 대화를 풀어나가고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은 뛰어난 잠재력을 가졌으며 언젠가는 경제적, 재정적으로 훌륭한 나라가 될 것이라 진심으로 믿습니다. 김정은도 이에 대해 저와 뜻을 같이합니다. 이 일은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적으며 북한의 잠재적 경제력을 높이 평가하고 미국의 호의적 입장을 확고히 했다.

  5월 30일 북한 체제의 최고위 간부 가운데 하나인, 북한 중앙노동당 부위원장이며 전직 군 정찰총국장이었던, 김영철이 미 국무장관 마이크 폼페이오를 만나기 위해 워싱턴으로 향했다. 남한의 연합 신문은 김영철의 임무를 밝히며, 2000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북한 특사임을 언급했다.

  6월 1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며 새로운 대화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 사이 평양의 김 위원장은 러시아의 외교부 장관 라브로프를 접견했다. 그는 김 위원장을 러시아로 초대하는 푸틴의 의사를 전했다. 우리는 1950년 스탈린이 미국을 도발하고 중국을 갈등 관계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북한의 남침에 동의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분명 지금의 긴장 완화 정세는 러시아로 하여금 경제적인 이득과 대륙과 한반도를 잇는 철도인, 새로운 물류망 확충으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   

  6월 2일,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6월 12일에 개최되리라는 소식이 공식적으로 전해졌다. 트럼프는 백악관의 집무실 오벌 오피스에서 김영철 부위원장을 만나 김 위원장의 편지를 직접 전해 받고 난 후, 스스로 이를 발표했다. 이는 싱가포르 회담을 향한 길을 여는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6월 5일 싱가포르 외교부 장관 비비안 발라크리쉬난는 북한 외무상 리용호를 만나기 위해 평양으로 향했다. 모스크바에서는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의 대화를 위해 베이징으로 향하기에 앞서 북미정상회담의 개최를 환영했다.

  6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경제 대국 수장들이 자리하는 G7 정상회담 참석차 캐나다에 있었다. 그리고 G7 회의에서 끝까지 참석하지 않고서 싱가포르로 향했고, 일요일인 6월 10일 그곳에 도착했다. 같은 날, 김 위원장은 중국 정부에게 제공받은 전용 비행기 에어 차이나 보잉 747기로 수행원들과 함께 도착했다.

  6월 12일 현지 시각 오전 9시에 북미정상회담이 열렸다. 이틀 전, 교종 프란치스코는 삼종기도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우정과 기도 안에서 사랑하는 한국 국민들을 각별히 생각하고자 합니다. 며칠 후 싱가포르에서 개최될 북미 정상 회담은 한반도와 온 누리에 평화의 미래를 보장하는 바람직한 길을 개척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습니다.”11)

  북한은 왜 핵무기를 개발했을까?

  많은 이들은, 어째서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을 시작하면서 남한과 미국과 연대하며 완전한 비핵화 선언이라는 외교적 어려움을 급작스럽게 감행했는지 자문한다.12)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면 어째서 북한은 비록 군사적인 갈등이 커질 것이라는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과시하면서까지 핵무기를 개발하려 노력하였는가를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13)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전 세계에서 그 어떤 나라도 북한 사람들처럼 이렇듯 오랜 시간 동안 핵무기의 위협을 직접적으로 받은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기술하였다.14)

  북한의 핵과 관련된 역사는 미국이 한국전쟁(1950~1953) 때 북한과 중국에 핵무기를 사용할 것을 고려하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부터 북한은 체제를 보호하고 국가적 안전을 확고히 하기 위해 핵무장을 원했다. 그리고 이라크와 리비아의 몰락을 보며 어떤 교훈을 분명하게 얻었다. 이 두 경우 모두, 미국은 핵무기를 포기한 체제들의 파멸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었다.15) 핵을 개발하려는 북한의 의도는 2003년 핵확산금지조약(TNP)에 탈퇴를 선언하며 실질적으로 공식화되었다.16)

  결국, 북한의 핵무기 개발 계획은 그 자체로 “외교적(diplomatici)”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속에서 북한은, 굶주림과 치료가 결여된 질병들로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악화시켰다. 무엇보다 도시에서 벗어난 오지의 상황은 심각했다.

  비록 최근의 바뀐 정세가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지 여전히 더 바라봐야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협상 능력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김위원장의 의도는, 체제를 유지하고 고립과 제재에서 벗어나, 경제를 회복시키려는 데에 있음이 분명하다. 이런 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을 향한 위협적인 전략과 경제 제재 강화에 있어서 승리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김 위원장 역시 미국을 자극하는 위치에 잠정적으로 도달하고, 그리고 가장 강한 지점에서 자신들의 군사력을 외교적 결실과 맞바꿔 조율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승리를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무엇이 과연 우선순위인가? 과거에 남한과 미국은 선 핵폐기 후 평화협정이라는 정책을 고수했다. 반면, 북한의 입장은 평화의 구축과 핵폐기를 동시적으로 시행하는 것이었다. 이 두 입장은 수년 동안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나아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3년 8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남한과 북한은, 북한의 핵을 폐기하여 한반도를 평화 상태로 만들고자 6자회담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동북아시아의 안보를 위해 평화적 해결책을 찾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2005년 9월 19일의 공동성명과 2007년 2월 13일의 합의가 6개국의 회담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처음에 중국이 제안했던 비핵화와 평화정세의 구축을 동시에 이루는 것을 원칙으로 전제하였다. 이 원칙은 지금까지 여전히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합리적인 선택 가능성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미 드러났듯, 6자회담의 합의들은 북한과 미국에 의해 이행되지 못하였다.17)

  싱가포르 선언

  누군가는 지금 상황이 6자회담 때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몇몇 사항들은 정상회담의 결과와 관련하여 어느 정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매우 오랜 세월이 지나 이루어진 북한과 미국의 이 대화는, 각 정부 특사단의 만남이 아닌, 정상 간 회담이었다. 즉, 양국 최고지도자들의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을 만나는 과정에서 신뢰를 획득하였고, 이 안에서 자신의 외교 능력을 드러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정상회담은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자신의 협상 능력을 과시하기 위한 특별한 기회였다. 무엇보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한 협상에 개인적으로 부정적 평가를 했고 자신의 평가를 바탕으로 이란과의 교섭을 거부했기에 김 위원장과의 협상에서는 성공을 거두기를 바랐다. 또 다른 의미 있는 요소는 남한이 미국과 함께 긴밀하게 교류하였고,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헌신적으로 중재하였다는 데에 있다. 몇몇 분석가들은 김 위원장이 남한을 따로 떼어놓고, 무시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하는데, 그들이 믿는 것처럼 남한은 단순히 북미정상회담에서 도외시된 나라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다른 한편에서 남한과 미국 사이에서 매우 수준 높은 협력이 있었다.

  현재 싱가포르 선언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안전을 보장하기로 약속했고,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그의 확고하고 흔들림 없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상호 신뢰 형성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음”도 분명하게 언급되었다. 동시에 이 회담은 «두 나라 사이에서 수십 년에 걸친 적대와 긴장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데 매우 중대한 세기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싱가포르 회담 합의문의 네 조항은 다음과 같다.

  1.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평화와 번영에 대한 두 나라 국민들의 열망에 따라 서로 간에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기로 약속한다.

  2.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항구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만드는 노력에 함께한다.

  3.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한다.

  4.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미 확인된 유해의 즉각적 송환을 마련하고, 전쟁 포로와 실종자의 유해 발굴을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한다.

  이렇듯,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이의 관계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무엇보다 한반도에 새로운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판문점 선언을 재확인한 이 선언은 한국전쟁의 공식 종전에 대한 제안과 상호 불가침의 조약 그리고 북한과 미국 사이의 평화협정이라는 해법들을 함축한다.

  실질적인 비핵화가 실현될지 그리고 이러한 합의들이 얼마만큼 한반도의 평화와 균형의 미래를 확고히 하게 될지는 오로지 시간이 알려 줄 일들이다. 현재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확실한 로드맵도 보장도 없다는 점이다.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는 여전히 해제되지 않았다. 그들이 제재에 굴한다면 평양이 국제 경제 체제에 들어선다는 신호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트럼프 대통령의 몇몇 선언들이 이를 가정하고 있지만, 아직 우리는 그 지점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 종료와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도발적이고 값비싼 전쟁놀이(provocatori e costosi war games)”라고 갑작스럽게 규정한 바 있는 한미연합 훈련을 중단하였다. 그리고 이는 베이징에서 기대했던 “북핵 쌍중단(freeze for freeze)” 전략이다. 우리는 김 위원장이 에어차이나 항공기로 싱가포르에 도착하였다는 것을 기억한다. 이는 이번 회담에 중국이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함께 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18)

  그러나 특정 지역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이 지체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위험을 억제할 현실적 능력이 없이는 일본이 위험해질 수 있다. 한편으로 남한에 대한 북한의 위협은 단순히 핵미사일뿐만 아니라, 대략 13,600문으로 추정되며 남한을 향해 고정된 장사정포도 있음을 직시해야만 한다. 남한은 북한에 군사분계선으로부터 40km 떨어진 곳으로 포들을 이동할 것을 요청했다.

  몇몇 비평가들은, 명백하게 승리한 회담이었지만, 김 위원장의 승인이 없었다고 평가하며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였다. 이 두 정상은 대등한 입장에서 회담했다. 김 위원장의 아버지, 그리고 그의 할아버지도 이와 같은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였었다.19) 김 위원장 스스로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하는 순간에 “많은 이들이 이번 회담을 일종의 판타지 영화로 생각할 것(molti staranno pensando che il nostro incontro sia uscito da un film di fantascienza)”이라 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실제로 이러한 감격은 두 지도자가 함께 서 있는 모습만이 아닌, 미국과 북한의 국기가 그들의 등 뒤에 나란히 자리한 모습을 보는 데에서도 일어났다.

  서울대교구 교구장이자 평양 교구장 서리인,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은 화해를 위한 미사를 봉헌하며, 강론 중에 이 역사적 사건을 언급하였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시피 이 정상 회담 한 번으로 문제가 일거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해결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은총으로 한반도에 평화의 길을 올바로 놓는 작업의 첫 삽을 뜬 것입니다. 어쩌면 앞으로 수많은 난관을 뚫고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어떠한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꿋꿋이 헤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한국 사회는 지난 몇 달 동안,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화해의 바람을 표현하였다. 아직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러나 희망은 싹트고 있다.20)


1) http://imnews.imbc.com/replay/2018/nwdesk/article/4593810_22663.html(접속일: 2018.8.11).
2) 프란치스코 교종이 국제 관계 안에서 장려하고 2014년 한국 방문 이후로 한반도에도 적용한 “만남의 문화(cultura dell’incontro)”에 최근 한반도의 변화가 상응하고 있어 고무적이다. 참조. A. Spadaro, 『Il nuovo mondo di Franceso. Come il vaticano sta cambiando la politica globale』, (Venezia: Marsilio, 2018); 같은 이, «il viaggio di papa Francesco nella Repubblica di Corea. Custodia, empatia, consolazione», in Civ Catt. 2014 III 403-418; 같은 이, «Presente e futuro della Corea. Intervista a mons. Hyginus Kim Hee-jong», ivi 2017 IV 766-777). 편집자 주. 여기서는 주교회의가 번역한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간청”을 인용하여 실음.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프란치스코 교황 2018년 4월 25일(수) 일반 알현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기도 요청」, 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200&bid=13013324&page=3&key=&keyword=&cat= (접속일: 2018.8.6).
3) 선언문은 www.korea.net 에서 발표되었다. 편집자 주. 한국어 전문은 통일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http://www.unikorea.go.kr/unikorea/news/live/?mode=view&cntId=54511%20 (접속일: 2018.8.12).
4) R. Goldman and Choe Sang hun, 「North and South korea Summit Is Short on Details, but Long on Theater」, in 『The New York Times』, (2018. 4. 27). www.nytimes.com/2018/04/27/world/asia/north-korea-south-border.html (접속일: 2018.8.12).
5) www.kinu.or.kr/pyxis-api/1/digital-files/c59a3264-4fe1-4f08-9595-f195e0db1bed (접속일: 2018.8.12).
6)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42525 (접속일: 2018.8.12).
7) Seil Oh, «La Corea del Sud dopo la “Rivoluzione delle candele”», in Civ,Catt. 2018 124-136.
8) M. Landler, 「Spies, not diplomats, take lead role in planning Trump’s North Korea Meeting」, in 『The New York Times』, (2018. 3. 16).
9) 폼페이오는 미국 정부를 대표해 북한을 방문한 인물로 세 번째이다. 2000년에 미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평양을 방문하여 현 북한 지도자의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외교 현안을 논의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 2014년, 미 국가정보국 국장 제임스 클래퍼가 북한에 억류 중인 두 미국인의 석방과 정찰총국장과 만남을 위해 북한을 방문했다.
10)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는 자신의 선택으로 핵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개발했지만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11) 편집자 주. 여기서는 주교회의가 번역한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기도”를 인용하여 실음.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기도 (2018년 6월 10일 주일 삼종기도에서)」, 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200&bid=13013383&page=1&key=subject&keyword=%BA%CF%B9%CC&cat= (접속일: 2018.8.7).
12) 미국의 군사적 정찰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해까지 타국 정상과 교류하지 않는 지도자였다.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를 원색적 표현을 동원해 비난했던 것을 기억한다. M. Stevens, 「Trump and Kim Jong-un, and the names they’ve called each other」, 『The New York Times』, (2018.3.9).
13) 구체적인 분석은 다음을 참조할 것. G. Sale, «Corea del Nork e crisi nucleare», in Civ.Catt. 2017 IV 339-354.
14) 참조. 『노동신문』, (2012.3.22.), in http://www.rodong.rep.kp/ko/
15)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마치 여전히 지닐 수 있는 것처럼 행동했지만, 화학무기와 생화학무기를 포함한 대량살상무기를 모두 폐기하였다. 비록, UN이 이라크의 무기 시설 폐기를 확인했지만, 2003년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였고, 체포된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인들에 넘겨져 사형 선고를 받았다. 소비에트 연방의 와해 이후, 그들의 영토에서 배치되었던 핵무기를 포기한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여전히 열려 있다. 대신에, 1993년에 체결된 부다페스트의 “각서(Memorandum)”로, 미국과 영국 그리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타국의 침략을 받을 경우 안보리 차원의 지원을 약속했다. 2014년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장악하였고, 돈바스와 루한스크에서 갈등을 일으켰을 때, 다른 강대국들은 이에 반응하지 않았다. 교훈은 분명하다: 핵무기가 지닌 힘은 그 나라를 주변의 강압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란과 핵 합의를 이끌었던 미국이 지난 5월 핵 협정을 파기한 것을 주목할 수 있다(JCOP: 포괄적 공동행동계획).
16) A. Macchi, «Il ritiro della Corea del Nord dal Trattato di non proliferazione nucleare», in Civ. Catt. 2003 I 337-344.
17) 무엇보다 6자회담의 실패는, 동시적 이행이라는 원칙에 대한 문제가 아닌, 두 양국 간의 불신에 기인한다. 한편에선, 북한이 핵시설 시찰에 대해 충분히 명료하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합의에 대해 부시 정부의 높은 요구가 있었다. 그리고 리비아와 이라크가 걸었던 몰락의 길은 북한이 협상 파트너를 불신하게 하였다.
18) 또한, 3만 명이 넘는 미국의 한반도 주둔도 불확실해졌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미군이 철수한다면 중국으로서는 커다란 성공일 것이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미군을 중국 국경에서 멀리 떨어뜨릴 수 있는 완충장치로 생각해 왔다. 중국은 미국의 우방국들과 국경이 인접한다는 점에서 지정학적으로 사실상 “포위(accerchiamento)”상태이다. 일본을 비롯하여 남한, 믈라카 해협, 그리고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에서 중국으로 유입되는 물류들은 미국항공모함의 통제하에 있다.
19) 회담 후에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를 좀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참조. Jennifer Williams, 「Read the full transcript of Trump’s North Korea summit press conference」, 『Vox』 (2018.6.12.). www.vox.com/world/2018/6/12/17452624/trump-kimsummit-
transcript-press-conference-full-text (접속일: 2018.8.7).
20) 싱가포르 회담 이후의 전개는 긍정적이었다. 남한과 북한은 군사 직통전화를 다시 복구하기로 합의를 보았고, 판문점의 완전한 비무장화에 대한 주제를 협의했다. 그리고 서해 해상 분계선의 우발적 충돌 방지에 대한 2004년의 남북 합의를 온전히 적용하도록 기초를 놓았다. 그리고 서해 해상 분계선인, 북방 한계선 일대를 평화수역화 하며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해 여러 현안을 검토하기로 하였다. 북한은 한국전쟁 중 38선 북쪽 지역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의 유해 5,300구 가운데 200구 이상을 수습해 미국으로 송환했다. 유해 발굴 작업은 이미 1996년부터 시작했지만, 양국 관계가 악화되면서 중단되었었다. 이 사이에 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세 번째로 만났다. 시 주석은 김 위원장에게 북한의 경제 재건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한반도의 비핵화 과정에 직접적인 관심을 약속했다. 김 위원장이 베이징에 도착하기 몇 시간 전, 미국과 남한은 38선을 평화적으로 만들기 위한 의미 있는 행보로, 8월 연합군사훈련을 일시 중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