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과 부제직

잔카를로 파니(Giancarlo Pani, 예수회)
이정주 신부 번역

  2016년 5월 12일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여자 수도회 총원장들에게 허락하신 일반 알현에서, 어떤 수녀가 교황께 왜 여성들은 교회 안에서 의사 결정 과정과 성찬례 거행 때의 설교에서 배제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녀의 표현에 따르면 “교회와 사회의 삶에 대한 모든 표현에는 여성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당신의 답변에서 고대 교회에 여성 부제들의 존재를 암시하셨다. “여성 부제들의 역할은 여성들의 세례에서 사제들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었고, … 여성들의 몸에 도유를 해 주기 위한 것도 있었습니다.”
  또한 여성 부제들은 다른 직무도 수행하였다. “남편이 아내를 때리고, 그래서 아내가 주교에게 가서 하소연을 한 이유로 혼인 재판을 할 때에, 여성 부제들은 남편의 구타로 여자의 몸에 남겨진 타박상을 살펴보는 일을 맡았습니다.”
  마지막에 교황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그 문제를 연구할 수 있는 공식적인 위원회를 구성하겠습니다. 이를 밝히는 것은 교회에 선익이 되리라 믿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한 일들을 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3개월 뒤인 8월 2일, 교황께서는 그 약속을 존중하시어, 특별히 역사 안에서의 여성 부제직이라는 주제를 연구하기 위한 위원회를 설치하셨다. 그 위원회는 이미 업무를 시작하였다. 그 결과들을 기다리며, 여기에서는 역사적 성격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복음서들과 여성들

  이 소식은 곧바로 가톨릭과 비가톨릭을 망라한 언론들 사이에 전파되며, 다양하고 상반된 반응들을 불러일으켰다. 어떤 이들은 여성들의 종신 부제직이 과거 시행된 적이 있던 고대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합법적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다른 이들은 이를 여성 사제직을 향한 첫걸음으로 여기고, 가톨릭 교회에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여성에 대해서 복음서들은 새롭고도 긍정적이며, 선입견 없는 태도를 보여 준다. 예수님께서는 공적인 자리에서 여성들과 대화하셨다. 이는 당시 통념상 스승으로서 품격에 맞지 않는 태도이다. 그분께서는 “간음한 여인을 히브리 율법의 이름으로 단죄하고자 했던 모든 남자에게 맞서셨고, 베타니아 마을에 사는 마리아가 한 애정 어린 행동을 비판하는 자들을 향해 이를 변호하셨으며, 죄짓고 회개한 여인이 가진, 바리사이인 시몬보다 훨씬 더 위대한 사랑의 자세를 칭송하셨고, 부활하셨을 때에는 사도들에게 모습을 보여주시기 전에 먼저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셨다.” 이 마지막 선택이 아마도 가장 의미심장하다. 주님께서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복음의 첫 번째 메시지를 맡기셨고, 그 위에 그리스도교가 근거하고 있으며, 그녀의 증언은 복음 선포를 통해 온 세상에 널리 퍼졌다.
  예수님께서는 여자들의 증언이 “헛소리”(루카 24,11 참조)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잘 알고 계셨지만, 교회 안에서 증언할 최초의 과제를 위해, 그리고 바로 그 사도들을 깨우치시기 위해 일관되게 그녀들을 선택하셨다. 마찬가지로,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도 여성과의 관계에서 혁신적인 방식을 취하였으며, 학자들은 이 시기를 다음과 같이 여길 정도였다. “여성 직무에 대해서는 봄처럼 활짝 핀 시기이다. […] 첫 번째 복음화의 시기에는 여성들이 그 직무에 참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가정 교회들을 이끌기도 했다고 많은 역사가들이 확신한다.”

사도 시대와 그 직후 시대의 ‘여성 부제들

  신약 성경에서 ‘여성 부제들’에 관하여 암시하는 구절들은 거의 없지만, 로마서는 마지막 장에서 이에 대해 언급한다. 바오로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자매이며 켕크레애 교회의 일꾼이기도 한 포이베를 여러분에게 추천합니다”(로마 16,1). 포이베는 1세기 교회에서 이름이 알려진 유일한 여성 부제이다. ‘교회의 부제’로서 그녀의 존재는 여성으로 언급되고, 문장 구조 자체에서 볼 때, 그녀의 부제 직무를 강조한 것은 명확하다. 그러나 그 봉사의 영역들을 명시하지는 않는다. 바오로는 그녀에게 또 다른 자격, 곧 ‘prostatis’(돌보는 사람, 후원자)의 자격을 부여하여, 하나의 다른 특별한 임무를 표시한다.
  어쨌든 ‘부제’라는 용어에, 바오로가 자신과 자신의 협조자들에게 부여한 ‘복음의 일꾼’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오리게네스는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여성들도 교회의 직무에 임명된다. […] 따라서 [사도는] […] 교회 안에는 직무에 적합한 여성들이 있으며, 많은 이들을 도와주고 자신들의 합당한 봉사로 사도라는 칭송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춘 여자들을 직무에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친다.”

  또한 여성들은 사도직과 예언직의 기능들도 수행하였는데, 이는 로마서 16,7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의 동포이며 나와 함께 감옥에 갇혔던 안드로니코스와 유니아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그들은 뛰어난 사도로서(en tois apostolois)….” 아마도 한 쌍의 부부인 것 같다. 그리스 말 본문에는 유니아의 성별이 남성일 수 있어서 문제이지만, 실제는 여성이다.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사도들에 속한다는 것이 벌써 위대한 일이지만, 그들 가운데에서 뛰어나다는 것은 대단한 찬사이다. […] 이 여성은 사도들이라는 칭호로 불리기에 합당한 존경을 받았다.” 크리소스토모에 따르면, 유니아라는 이름은 한 여성의 것이지만, 그녀는 “사도들”이라는 직함으로 평가된다. 바오로가 서간들의 서두에 자기 자신을 정의하는 것과 같은 용어이다.
  또 다른 기록인 티모테오 1서 3,11에서 저자는 주교들과 부제들에게 가르침들을 준 다음, “여자들”에 대해 “품위가 있어야 하고, 남을 험담하지 않으며, 절제할 줄 알고 모든 일에 성실해야 합니다.”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이 “여자들”은 누구인가? 방금 언급된 부제들의 아내들인가? 그렇다면 “‘그들의’ 여자들”이라고 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주석가들은 이 여자들이 공동체의 여성 부제들이라는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 구절은 ‘여성 부제들’의 제도에 대한 중요한 논제로 여겨진다.

  여기서 플리니오 일 조바네(Plinio il Giovane)가 트라이아노 황제에게 쓴 편지(111-113년경)가 강조되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diakonoi’의 번역일 수 있는 ‘ministrae’라는 용어가 언급된다. 통치자는 바로 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얻은 소식을 전해 주곤 하였다. “나는 ‘ministrae’라고 불리던 두 여종을 고문시킬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만일 그 용어가 암시하는 역할들을 특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당연히 저자는 2세기에 여성 부제직의 형태가 존재했다는 호의적인 증언을 옮길 것이다.
  눈여겨 볼 점은 초기 2세기 동안 ‘부제’와 ‘주교’라는 용어들은 (마치 ‘성품’에 따라오는 형태와 같은) 특별한 체계를 갖지 않았고, 교회 권위로부터 공동체 안에서 특별한 의무를 위해 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임무를 지칭한다. 이 용어들에게 후대의 성사적인 해석에 근거한 의미를 반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후 세기들

  교회 역사의 초기에, 이와 비슷한 교회의 여성 중심주의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아마도 유다교 전통에 재흡수되었을 것이다. 코린토 1서 14,33ㄴ-35에서는 여자들에게 교회 안에서 잠자코 있으라고 권고하는데, 이는 바로 이러한 영향의 표징일 수 있다(주석가들은 이를 후대에 첨가된 부분으로 본다). 어쨌든 거기에 표현된 제한은 티모테오 1서 2,11-12에서 확증되는데, 거기서는 여자들에게 “남을 가르치거나 남자를 다스리는 것”을 명백히 금지한다.
  3세기에는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나 위에서 살펴본 오리게네스가 여성 부제들에 관하여 증언하지만, 거기에서 그 시대에 여성 부제의 ‘품계’가 존재했다고 추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사도들의 가르침」(Didascalia degli Apostoli: 240년 시리아 지역의 문헌)에는 기록되어 있다. 전례학자인 마르티모르(Martimort)에 따르면, 이는 “여성 부제를 사목적인 동시에 전례적인 참된 직무로 우리에게 소개”하는 문헌이다. 거기에는 침수로 거행되던 여성들의 세례가 언급되어 있고, 여성 부제들은 세례의 도유와 새 개종자들에 대한 종교 교육의 과제를 맡았으며, 병약한 여성들도 돌보아야 했다. 그럼에도 그녀들의 직무는 제한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들은 세례를 줄 수도 없었고, 가르칠 수도 없었다.
  4세기에 에피파니우스(Epifanio)와 「사도 법령」(Costituzioni apostoliche)이 여성 부제들의 직무를 언급한다. 에피파니우스는 세례의 침수 중에, 그리고 질병의 경우 여성들을 보조하는 임무를 맡은 “여성 부제들의 품계”가 교회 안에 있다고 확증한다. 에피파니우스는 몬타누스의 여사제들에 맞서 논쟁을 벌이는데, 그들은 사제 직무를 수행하여 처벌된 이들이다. 그리고 성경을 제시하며, 구약과 신약에서 어떠한 여성 사제의 존재도 배제되었다는 것을 주목하게 한다. 그 밖에도 사도들 가운데에는 여성들이 없었으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께서도 사제직을 갖지 않으셨다고 강조한다.
  4세기 말에는, 「사도 법령」이 세례 예식 중에 여성 부제들이 수행한 여성 직무들에 대해 구체적인 표지들을 제시하면서, 에피파니우스가 지적한 것들을 확증하고, 여자들에게는 사제직이 닫혀 있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과 세례를 주는 것이 그녀들에게 금지된다는 것을 덧붙였다.
  여성 부제들의 축복 예식에 사용된 ‘성품’이나 ‘안수’라는 말들과 기도문들은 차부제와 독서자들에게 사용된 같은 것들이다. 

  서방에서 암브로시아스터(Ambrosiaster, 4세기 말)는, 오로지 남자만이 하느님의 형상이므로 여자를 부제로 서품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여자들이 교회에서 말하는 것도 수치가 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몇몇 지역 공의회들도 성사 집전들이 자기 몫이라고 주장하는 여자들에 대한 반대 선언을 한다. 반면에 라틴 교회에는 8세기 말 하드리아노 성사집에 여성 부제를 세우는 청원 기도(Oratio ad diaconam faciendam)가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 부제직은 어쨌든 서방 교회에는 널리 퍼져 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언할 수 있다.
  4-5세기부터 그 이후로 새로운 일들이 발생한다. 성인들의 세례가 줄어들고, 여성 부제들의 생활 양식이 수녀원 공동체를 이끄는 여자들의 생활 양식에 가까워진다. 카파도키아의 교부들이 증언하는 대로, ‘여성 부제’는 여성 은수자의 책임을 맡고, 가난한 이들과 곤궁한 이들을 돌본다. 크리소스토모는 다양한 여성 부제들과 광범위하게 편지를 교환하는데, 그 가운데에는 수도원의 ‘igumena’(곧 여자 아빠스)인 올림피아가 있다. 칼케돈 공의회(451년)의 제15조가 확증하는 것은 여성 부제들은 ‘안수’(cheirotonia)로 서품되고, 직무는 ‘leitourgia’라고 일컬어지며, 수품 이후에 혼인을 맺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동방에서는, 적어도 비잔틴 시기를 통틀어서, 여성 부제들은 여자 수도원 안에서 서품된다. 오늘날에도 정교회들에는 ‘서품된 여성 부제들’이 있고, 이 제도는 결코 폐지되지 않았다.

여성 부제직의 ‘문제’

  1994년 성령 강림 대축일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교황 교서 「남성에게만 유보된 사제 서품에 관하여」(Ordinatio Sacerdotalis)를 발표하셨다. 이 교서는 앞서 있었던 (「여성 교역 사제직 불허 선언」[Inter insigniores]을 포함한) 일련의 교도권의 가르침들을 최종 요약하면서, 예수님께서는 사제직을 위해 남자들만을 선택하셨다고 결론짓는다. 따라서 “교회는 여성에게 사제 서품을 할 어떠한 권한도 없다. […] 교회의 모든 신자들은 이러한 판단을 철저히 따라야 한다.” 이 선언은 여자들의 사제 서품을 거부하는 것에 대해 토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명확한 말씀이었다. 그럼에도 교회에는 “복음화의 사명과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의 삶 안에서 여성들의 역할을 인정하고 증진하여야 한다.”고 확언하신 1975년 바오로 6세 교황의 말씀이 갑자기 부각되었다. 

  시간이 조금 흘러, 교의 때문이라기보다는 교의가 제시된 강도(强度) 때문에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한 뒤, 교황청 신앙교리성에 하나의 질의가 제기되었다. 사제 서품은 “신앙의 유산(deposito della fede)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가? 답변은 “그렇다.”는 것이었고, 교의는 ‘무류적 선언’, 곧 “언제나, 어디서나, 그리고 신자 누구나 지켜야 하는”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 답변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있었고, 관련 문제들에 대한 교도권과 신학 사이의 관계에서 ‘긴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무류성에 대한 기초 신학에 관련된 것들이다. 역사상 처음으로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명확하게 ‘교회 헌장’(Lumen gentium) 제25장에 호소하는데, 거기에서는 주교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상호 간에 또 베드로의 후계자와 친교의 유대를 보전하면서 확정적으로 고수하여야 할 것으로 가르치는 교의가 지닌 무류성을 선포한다.
  더욱이 이 문제는 성사들의 신학을 다루는데, 이는 성품성사의 주체가 전통적으로 남자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세기에 가정과 사회 안에서 여성의 존재와 역할이 가져온 발전들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이는 품위와 책임의 문제이고, 교회적 참여의 문제이다. 

콩가르 신부의 지적

  성별의 장애(impedimentum sexus) 때문에 사제직으로부터 여성이 배제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거부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미 1948년에, 곧 60년대의 논쟁들이 있기 훨씬 전에 콩가르 신부는 “어떤 사실이 없었다고 해서, 그것이 교회가 그것을 할 수 없고 앞으로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제나 현명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결정적인 기준은 아니다.”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또한, 다른 신학자는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수 세기 동안 지속되어 온 ‘신앙 감각’(consensus fidelium)이 특히 여성에 관심을 가졌던 심오한 사회-문화적 변화들로 20세기에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다만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지지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만, 교회가 제시하는 교의가 신자들의 지성을 통하여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진실이다. 여성 사제들에 관한 논쟁은 교회사의 다른 순간들과 비교될 수 있다. 어쨌든 오늘날 여성 사제직의 문제에서 ‘권위’(auctoritates), 곧 교도권의 공식 입장은 명확하다. 그러나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이러한 선택의 ‘근거들’(rationes)을 이해하기 힘들어 하는데, 그것이 권위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권위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오늘날 교회의 직무에서 여성들을 배제하는 것이 동등한 품위를 확언하고 강조하는 것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 불편함이 존재하고 있다.” 

  근저에 존재하면서, 논쟁에서 다시 떠오르는 반대 의견이 존재한다. 무엇 때문에 고대 교회는 몇몇 여성들을 부제직에, 또 심지어는 사도직에까지 받아들였는가? 그리고 그 이후 여성은 왜 이러한 직무들에서 배제되었는가?

여성들을 위한 ‘부제직의 은총’

  2005년 콘클라베 전의 일반 회합에서 있었던 발언에서, 마르티니(Carlo Maria Martini) 추기경은, 교황 교서 「남성에게만 유보된 사제 서품에 관하여」에서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으므로, 여성들에 대한 부제직 제도를 연구할 가능성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는 고대 교회사에 여성 부제들이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식별의 기준으로 삼도록 권고하였다. 원천들로 돌아갈 것, 근원들을 연구할 것, 모든 것을 하느님 자녀들의 자유 안에서 평가할 것, 그 가운데에서도 복음에 대한 엄격한 충실성을 지키며 수행할 것 등이다. 이것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소중하게 생각하신 동일한 영적 식별의 기준이다. 

  본지는 이 주제에 대하여 여러 차례 관심을 가졌다. 장 갈로(Jean Galot) 신부의 글들을 특별히 기억해야 하는데, 이는 공의회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그 이전 상황에 대한 기준점이 된다. 더 최근에는 피에르산드로 반잔(Piersandro Vanzan) 신부의 논문이 구체적으로 ‘여성 부제들’에 대해 다룬다. 저자는 공의회 이후의 저서들을 통해 그 역사를 살펴본다. 여기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이런 직무들의 성사성에 관계된 것인데, 고대 문헌들의 연구에서 신학자들은 상반된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다니엘루(J. Daniélou), 그리손(R. Gryson) 그리고 바가지니(C. Vagaggini)는 여성 부제들의 서품과 남성 부제들의 서품 사이의 본질적인 유사성을 보증한다. 반대로, 마르티모르(A.G. Martimort)는 동방 여성 부제들의 서품들은, 말하자면 대품들(부제직, 사제직, 주교직)과 넓은 범위의 소직무들(차부제, 시종직, 수문직 등 ‘서품’되지 않는 것들)사이의 중간에 자리하는 것으로 여긴다. 

  마지막으로, 코라도 마루치(Corrado Marucci) 신부는 제1천년기의 교회 안에서 여성 부제의 존재와 직무들, 그리고 성사성에 관한 혼란스러운 문제들을 다루었다. 그는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여성 부제들의 서품들은 성사적 품위를 가졌을 것이라고 인정한다고 주장하며, “거의 모든 논증이 고대와 중세 교회의 여성 부제들이 남성 부제들과 비슷한 성사적 성품을 받았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고 생각하게 한다.”고 강조하면서 결론을 맺는다. 이것이 여성들을 위한 부제직의 은총이다. 

몇 가지 결론적 성찰

  위에서 살펴본 대로, 5세기의 교회에(칼케돈 공의회, 제15조) ‘서품 받은’ 여성 부제들이 있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지만 그러한 ‘서품’(cheirotonia)을 (‘안수’[cheirothesia]로 이루어지는) 성사로 여겼는지 또는 다만 축복이나 준성사로만 여겼는지는, 전례 용어학 자체의 발전이나 해명을 염두에 두면서, 미래에 밝혀져야 할 문제이다. 그리고 이는 특히 20세기 후반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여성 부제직을 부활시키자는 요구들에 응답하기 위해서 그러하다. 명료한 언급은 전통의 권위 있는 해석자인 교도권으로부터 주어질 수 있다. 어쨌든 마치 과거에만 성령의 가르침들이 있는 것처럼, 언제나 과거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오늘날에도 주님께서 교회를 이끄시고, 용기를 가지고 새로운 전망들을 받아들이도록 암시를 주신다. 그 밖에, 서두에 언급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확언도 이미 알려진 것들에만 국한하지 않고, 성령께서 교회를 이끄시도록 복잡하고 현실적인 분야에 작용하기를 바라신다.

  진짜 문제는 여성 부제직만이 아니라 남성 부제직의 성사성도 마찬가지이다. 몇몇 신학자들은 이것이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암묵적으로 선언되었다고 여긴다(DS 1765항과 1776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헌장’에서 부제직을 성사로 생각하려는 의향을 받아들인다. 부제에게는 “사제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봉사 직무를 위하여 안수를 받는다. 사실 그들은 성사의 은총으로 힘을 얻고, 주교와 그의 사제단과 친교를” 이루도록 안수가 주어진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는 2009년에 자의 교서 「모든 이의 관심」(Omnium in mentem)을 통하여, 부제직을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in persona Christi capitis) 세워진 직무들에서 배제하셨다. 따라서 “부제들은 전례와 말씀과 사랑의 봉사로 하느님 백성을 돌보는 힘을 받는다.”

  국제신학위원회도 부제직을 성사적 실재로 생각하면서도 명시적으로 여자들은 제외하였는데, 이는 초대 교회의 전통에 따르면 그들의 직무들이 “순수하고 단순하게 부제들에게 비교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래를 위한 전망

  과거에도 그렇고 오늘날까지 카르투시오회의 몇몇 관상 수녀원에서는, 사제가 없는 경우에 시간 전례를 주관하고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장상 수녀에게 자격을 주기 위하여, 주교가 부제 영대를 수여하는 장엄한 예식을 거행하곤 하였다. 카르투시오회의 정관들은 이러한 수여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고독 안에서 이루어지는 위대한 성사요, 그리스도와 교회의 성사이며, 이에 대한 탁월한 모범이 동정 마리아께 있다.” 교회 안에 여성의 직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한 중요한 표지이다.